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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Italy

카레짜호수 Lago di Carezza <스위스/이탈리아 55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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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돌로미티에 다녀온 후 남편과 내가 꿈꾸는 여행지 0순위는 늘 그곳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코비드19 때문에 4년을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드디어 돌로미티를 다시 찾았다. 지난 번에는 돌로미티의 서부에서 시작, 알타 바디아 Alta Badia를 거쳐 트레치메까지 이동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트레일들을 골라 걸었었다. 이번에는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알페디 시우시 Alpe di Siusi와 발 가르데나 Val Gardena 그리고 지난번 못가본 카나제이 Canazei 세 지역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에는 높이 3,0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40개, 빙하 41개가 있다. 여기에 초보 수준부터 암벽등반 수준인 via ferrata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을 촘촘이 잇는 기막힌 하이킹 코스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아름답고 독특한 산봉우리의 향연이 끝없이 이어지며, 넓고 푸르른 알파인 메도우에는 지천으로 피어난 들꽃들이 흐드러진다. 여기에 숙박시설, 음식, 교통 시스템 등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하이커들의 '드림 데스티네이션'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09년 UNESCO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돌로미티라는 이름은 처음으로 이 산맥과 지형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18세기 프랑스 지질학자 Dolomieu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전쟁터였다. 1차대전까지 오스트리아가 점령하다가 다시 이탈리아 영토로 흡수됐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물론 원래 이 지역의 원주민 라딘 Ladin족의 문화까지 혼합돼 독특한 문화를 이룬다. 언어도 사우스 티롤 지역 주민 중 70%가 독일어를 주언어로 사용하고 25%가 이탈리아, 5%가 라딘어 순이다. 모든 표지판이 이탈리아어, 독일어 이중으로 표시돼 있으며 라딘어까지 3개 언어로 표시되는 곳도 많다.(이 블로그에선 이탈리아/독일어 순 표기)

 

처음 돌로미티 계획을 세울때 가장 헷갈리는 부분도 서로 다른 언어의 지명이었다. 몇 달간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야 했던 처음 보다는 한결 쉬워지긴 했지만, 하이킹 계획을 세우는데 다른 곳보다 최소 3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수고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보상으로 받으니, 행복한 투자가 아닐 수 없다.  

 

Siusi / Seis 

돌로미티의 첫 1주는 원래 알페디 시우시에 머물면서 트레일을 걸으려 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마을이 콤파치오 Compaccio에 한정돼 있어 가격도 비싸고 원하는 숙소를 찾기 힘들다. 대신 주변 마을을 서치하다가 알페디 시우시와 인접해 리프트나 버스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시우시 Siusi allo Sciliar에서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찾았다. 시우시는 사우스 티롤의 상징 실리아르 Sciliar/ Schlern 산 아래 자리한 작은 산간마을. 시우시에 머물면서 알페디 시우시는 물론 가까운 볼차노, 브레사노네 등 마을과 산타 마달레나, 카레차호수 등을 다녀왔다. 

 

시우시에서 1주일 렌트한 레지던스 에리카. 넓고 깨끗하고 전망도 좋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숙소 중 하나다. 1층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거실의 발코니에서 실리아르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긴 하이킹 후 아름다운 뷰와 훌륭한 와인의 저녁식사. 여행자로서 더 이상의 바램이 있을까.

 

시우시에서 성 발렌티노 교회 Chiesa di san Valentino로 가는 트레일. 실리아르(2564m) 바위 봉우리와 흐드러진 들꽃 속에서 들판을 걷는다. .

 

웅장한 실리아르 산을 배경으로 푸른 초원위에 홀로 서있는 교회. 비가 살짝 뿌리더니 갑자기 영롱한 무지개가 떴다가 신기루 처럼 사라졌다.

 

 

시우시에서 프레술레 성Castel Presule까지 가는 11km의 Aica di Fiè Farm Trail. 전원과 오래된 농장들을 지나 이웃마을 피에 Fiè allo Sciliar가 보인다. 이 마을의 상징 프레술레 성은 로마시대에 건축된 유서깊은 성이다.

 

 

 

Lago di Carezza / Karersee

 

카레짜 호수는 돌로미티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호수다. 특유의 물빛으로 유명하지만 돌로미티에서는 드물게, 많이 걷지 않아도 쉽게 닿을 수 있는 호수라 더 인기가 있는 듯하다. 볼차노 버스 터미널에서에서 180번을 타면 약 50분 만에 호수 앞까지 데려다 준다. 

 

이 호수는 라딘어로 ’Lec de Ergobando’ 즉 '무지개 호수'라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호수에 인어가 살고 있었는데 마법사 마사레가 이 요정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마사레는 마녀의 주문에 따라 보석상으로 변장해 귀한 돌로 호수 위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인어가 물에서 나왔으나 마법사를 보고 겁을 먹고 멈추자, 화가 난 마법사는 무지개를 호수로 던져 버렸다. 그때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띠게 되었다는 동화 같은 전설. 그래서 '돌로미티의 동화같은 호수(Fairytale lake of the Dolomites)'라 불리기도 한다.

  

 

호숫가 산책로의 전망대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나마 6월초라 아직은 한산한 편이고 여름철에는 굉장히 붐빈다고.

 

듣던대로, 에머럴드 그린의 물빛이 환상이다. 뒤에 병풍처럼 서있는 라테마르 Latemar산의 장관이 호수의 완벽한 그림을 완성시켜 준다. 라테마르 산의 빙하가 호수로 흐르며 수심이 6~22m로 수시로 변한다고.

 

 

산책로를 걷는 동안 출발할 때 하늘을 가렸던 구름이 사라지고 뾰죽뽀죽 솟은 라테마르 산봉우리 정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의 1.3km 산책로 한바퀴만 돌고 간다. 그러나 너무 짧아 아쉬운 하이커들에게는 호숫가 주변으로 더 많은 트레일들이 기다린다. 숲으로 난 길을 걷다보면 웅장한 산들의 툭트인 전망이 눈앞에 나타나고, 숲속에 숨은 호젓한 호수도 만날 수 있다.

 

오후가 되자 더 눈부신 햇살 아래 하늘과 산과 숲이 짙푸른 호수에 담겨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전설속 마법의 호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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