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내내 아이거 북벽 North Face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들꽃 만발한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아이거는 장엄하고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하루 종일 햇빛 한 점 들지 않는다는 아이거의 북벽에는 불운한 등반가들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특히 1936년에 발생한 사고는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드라마로 남아 있다.
그 스토리를 소개하면, 7월 10명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반가가 북벽을 오르다가 험한 봉우리 등정을 앞두고 훈련 중 1명이 사망한 후 날씨로 인해 모두 포기하고 4명만 남는다. 그러나 이들도 며칠 후 한 명이 부상을 당하고 악천후까지 겹쳐 후퇴하기로 한다. 수직의 벽을 따라 자일을 이용해 하강하던 중 베이스에 거의 가까이 와서 눈사태로 3명이 떨어져 사망하고 만다. 토니 쿠르츠 한 명만 줄에 매달려 있었으나 눈사태로 산악가이드들도 접근할 수 없자, 쿠르츠는 자일들을 모두 풀어 구조대가 있는 곳까지 늘어 뜨렸고 가이드들이 새 자일을 연결해 그를 끌어 올렸다. 쿠르츠는 서서히 하강해 구조대와 5m 떨어진 곳에 이르렀으나 두 자일을 연결한 매듭이 고리에 엉키면서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아이거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듯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언덕 위 보이는 작은 집은 전에 아이거 북벽에 있던 hut을 옮겨 놓은 것.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내려가는 길에 작은 호수가 보인다. 인공호수로, 이른 겨울철 주변 스키장을 위한 인공 눈을 만든다고 한다.
호숫가에 보이는 작은 집은 전에 융프라우 철도 변전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안에는 아이거 북벽 등반의 루트와 역사, 장비 등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다. 또 호수가에는 이곳을 오르다 목숨을 잃은 69명의 산악인 이름이 새겨진 추모석도 있다.
이제 아래로 클라이네 샤이덱 역(2061m)이 보인다. 빙하와 들꽃 보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내려오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서는 벵겐, 라우터브르넨과 그린델발트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고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기차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두 개의 산악열차가 만나는, 융프라우 지역 교통의 중심지 이니 만큼 역도 가장 크고 여행객들도 많다. 역 주변에는 호텔과 레스토랑, 기념품 샵만 몇 개 있고 마을은 따로 없다.
클라이네 샤이덱 역은 아이거 북벽의 바로 아래 자리하고 있어, 역에서 보는 주변 전망도 장관이다.
벵겐으로 가는 열차 Wengernalp Bahn.
이 날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갔다가 눈길을 엄청 걸었기 때문에 피곤해 사실 난 여기까지만 걷고 기차를 타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길이 너무 아름답고 크게 힘든 길도 아니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걸어보기로 했다. 가다가 힘들면 기차를 타면 되지 하며 일단 걸어내려 갔다.
여기서 벵겐까지는 약 7km로, 여러 갈래의 트레일이 있다.
벵겐알프 Wengernalp 역을 지나, 드디어 벵겐 마을. 결국 여기까지 걸어서 왔다.
집에 오니 벌서 어둑해졌다. 아이거글래처에서 3시경 출발해 걷고, 쉬고, 사진 찍고 하면서 거의 6시간 정도를 걸은 것 같다. 아침 일찍부터 융프라우를 걸은 후라 나중엔 다리가 엄청 아팠지만 별로 힘든 줄도 몰랐다.
설산과 밸리, 들꽃과 초원으로 이어지는 눈부신 대자연의 풍경에 빠져 걷는 내내 행복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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