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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Switzerland

융프라우의 그림 같은 산악마을 벵겐 <알프스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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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남편과 나의 버킷 리스트 1순위였던 '알프스 트레'을 다녀온 후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알프스 앓이'를 하고 있다. 

흰 눈을 고스란히 간직한 웅장한 준봉들, 푸르르게 펼쳐진 초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꽃 그리고 그림같이 예쁜 마을들...알프스는 눈 돌리는 데마다 이런 전형적인 스위스 마을 화보가 펼쳐지는 곳이다. 그러나 그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산 길을 오르고 오솔길을 밟으며 경험한 알프스에는 스쳐가며 바라보는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완벽하게 어우러진 자연 속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들꽃에 취해 잠시 길을 잃고 헤메기도 했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풍경에 푹 빠져 멍해지기도 했다. 산 길 구석구석의 풀 한포기, 꽃 향기, 한 줄기 바람까지 아직 눈 앞에 생생하다가도 마치 꿈 속이었나 싶게 아득해 지기도 한다. 


이번 목적지는 융프라우, 마터호른, 몽블랑 등 알프스 3개 산의 하이킹 트레일을 걷는 것이었다. 워낙 유명한 산들이고 트레일도 너무나  다양해, 고르는 것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3주간의 일정 중 융프라우에서 7박8일, 마터호른과 몽블랑에서 3박4일 씩 지내면서 길고 짧은 트레일 15 여 개를  정하고 여기에 제네바 호수 주변을 추가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곳은 역시 융프라우 Jungfrau (Bernese Oberland) 지역이었고, 그 기대는 역시 틀리지 않았다. 

융프라우요흐 Jungfraujoch로 유명한 융프라우 지역은 인터라켄이 가장 큰 도시고 또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그린델발트 Grindelwald, 벵겐(또는 벵엔) Wengen, 라우터브루넨 Lauterbrunnen, 뮤렌 Mürren 등의 산악마을들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린 베이스캠프로 벵겐을 정했다. 인터라켄은 물론 그린델발트만 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 피하고 이왕이면 조용한 산 속의 마을에서 지내고 싶었다. 벵겐은 사실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낯선 이름이었지만, 서치를 하면서 벵겐이 이 지역 여러 트레일로 이동하기에 이상적인 위치임을 알게 됐다. 물론 마을풍경을 보고 한 눈에 빠진 것도 큰 이유이긴 했지만... 


부부가 알프스를 18번이나 여행하며 트레킹을 했다는 한 미국 여성은 알프스 사이트에 기고한 장문의 리포트를 통해 베이스캠프로 좋은 곳들이 많이 있지만, 벵겐만한 곳은 없다며 이 마을을 극찬했다. 벵겐으로 이미 예약까지 한 후에 이 글을 발견했는데, 경험자의 글을 읽고 일단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다녀온 결과, 다른 마을에서 지내보진 않았지만, 이에 적극 동의한다. 그만큼 여러가지 면으로 정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단, 차가 안다니고 기차도 갈아타야 하는 산중 마을이다 보니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다녀야 할 사람들에겐 시간적, 경제적으로 불편할 수도 있을 듯하다. 






벵겐의 그림 같은 마을 풍경. 


1274m의 해발고도에 위치한 벵겐은 차가 없는 카 프리(car-free) 마을이다. 워낙 깨끗한 알프스 산악마을에다 차 까지 안 다니니니 더욱 청정할 수 밖에...

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전기차인 택시나 업소용  그리고 서비스 차량들이 어쩌다 한 대씩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마을 도로에선 차 보다는 소들을 훨씬 많이 구경했다^^









우리가 묵었던 샬레가 벵겐 마을 중심에서 좀 떨어져 있어, 기차를 타러 가고 올 때는 이 길을 늘 걸어 다녔다. 

처음 도착한 날에는 햇빛도 뜨거운데다 무거운 가방 끌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너무 힘들어, 이렇게 높은 데였다니...하고 후회하며 올랐다. 그러나 짐 없을 때 걸어보니 산과 마을 전망, 들꽃 풍성한 길이 너무 예뻐서 여기 있는 둥안 가장 좋아하는 길이 됐다. 

이 언덕은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오르는 트레일 초입이기도 하다. 





겐 기차역. 


인터라켄 Ost역에서 기차로 라우터브루넨을 거쳐 벵겐에 도착했다. 갈아타는 시간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차가 안다니기 때문에 기차가 마을에 진입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또 다른 산악 마을 라우터부르넨에서 산악열차로 벵겐에 닿는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마을에 주차해 놓고 기차를 타야 한다. 

벵겐에서 기차로 융프라우 지역 어디나 쉽게 연결된다. 차가 안 다니는 대신 산악열차가 수시로 다니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바로 탈 수 있다. 





자그마한 벵겐 시내 중심가에는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샵 등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들이 몇 개 모여있다. 

우리가 갔을 때만 해도 스키시즌이 끝난 후인 6월초라 아직은 한산한 모습이었으나 7월부터는 여행자들로 매우 분주해 진다고 한다. 이곳은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하이커들에게 완벽한 마을이고, 겨울에는 스키, 스노우보드 등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꿈의 마을이 된다





벵겐에서 바라본 Breithorn의 위용 (4,164 m).








벵겐 역 앞 마을 중심에서 목동들이 소떼를 몰고 이동하기 위해 지나가는 모습. 

소 떼가 지나가면 라인을 쳐서 사람들의 통행을 막기 때문에 이들이 지나다길 기다려야 한다. 

어떤 소들은 엄청 큰 워낭을 매달아 너무 무거워 보인다.  








운이 좋게도 마을에서 부터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잠시 쉬고 있는 목동들 행렬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오르기 전 여기서 차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며 쉬고 소들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봄철에는 해발 800m 라우터브루넨에서 풀을 뜯던 소들이 해발고도 2,000~2,300m 안팎인 뱅겐알프 Wengernalp 클라이네 샤이덱 Kleine Scheidegg 초원까지 올라가 여름을 지낸 후 가을이 되면 다시 하산한다고 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인 피터는 소를 모는 목동들 중에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산중마을로 이주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고 말해 주었다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아이들.

부모를 따라 알프스에 오르는 이런 예비 목동들도 더러 보인다. 방학을 맞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듯...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 길을 오르는 목동들.





우리가 1주일간 묵었던 샬레 Alpwag.

방 2개와 부엌, 화장실, 거실이 있는 2층 전체를 우리만 사용해 너무 넓고 편리했다. 주인 노인부부와 딸 둘이 아래, 위 층에 사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딸만 아래층에 있어 더 조용하고 딸 에스터도 엄청 친절했다. 베란다에 나가면 바로 앞에 설산이 펼쳐지고, 근처에서 풀 뜯는 소들의 워낭소리가 딸랑딸랑, 넓은 뜰에는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이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스키시즌은 끝나고 본격적인 휴가시즌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2인 1주일 가격이 단 530 스위스프랑으로 물가 비싼 스위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예외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마침 목동들의 행렬이 우리가 묵은 샬레 앞 길을 지나가는 바람에 이른 아침 집 앞에서도 소 떼들을 볼 수 있었다. 






소들이 움직일 때 마다 딸랑딸랑 하는 맑은 워낭소리가 우리가 묵었던 샬레까지도 간간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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