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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 /Canadian Rockies

황금빛으로 물든 라치 밸리 <캐네디언 로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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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로키를 가을에 방문해야 할 이유를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됐다.

로키는 6월말까지도 호수의 얼음이 다 녹지 않기 때문에 여행하기에 적당한 시기는  대개 7월부터 10월까지다. 아무래도 7, 8월이 가장 날씨도 좋고 낮도 길어 트레킹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기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기니 그만큼 혼잡하기도 하다.

 

우리는 9월 초에 갈까 하다가 이왕이면 단풍이 들 때 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 9월 말로 변경하면서 한편으론 너무 춥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아침 저녁으로 좀 쌀쌀하긴 해도, 운이 좋게도 며칠간 계속 날씨가 너무 좋아 트레킹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로키의 가을에 푹 빠지게 됐다는 것.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을 로키를 강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을 산의 정취를 가장  많이 그리고 깊이 느끼게 해 준 곳이 바로 라치 밸리 Larch Valley 다.

라치 밸리 트레일은 모레인 레이크 Moraine Lake에서 출발하는 왕복 8.6km의 트레일. 모레인 호수 일대에도 여러 개의 트레일이 있으나 이곳은 특히 가을에 인기있는 트레일로 알려져 있다.

 

 

 

 

모레인 레이크 앞에서 트레일이 시작된다.

아침 일찍이라 호수가 아직은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어슴푸레하다. 호수 뒷편에 우뚝우뚝 솟은 텐 픽스 Ten Peaks의 장관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트레일의 또다른 특징.

 

 

 

 

로키에서 트레일을 걸으려면 어디서나 곰과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특히 모레인 레이크 일대는 곰들이 가장 많은 지역.

그래서 이 일대 트레일은 반드시 4명 이상이 함께 걷도록 규정하고 있다. 4명 이하로 온 사람들은 다른 등산객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가야 한다. 마침 트레일 입구에서 독일에서 온 커플이 기다리고 있어서 같이 출발하고 캘거리에서 온 다른 부부가 합류해 6명이 함께 산에 올랐다. 등산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어차피 곰이 나타날 기회는 없어 보인다.

 

출발지점에서 목표지점가지의 고도차(엘리베이션)가 535m로 상당히 가파른 부분도 있어 숨이 차다.

허니문 여행중인 독일 커플은 유럽 산을 누비던 체력(더구나 젊고!)으로, 그리고 중국계 캐네디언 부부는  캘거리에 살면서 로키에 자주 등산하던 경력으로 잘들 올라가던데 나만 헉헉 대는 듯 - -;; 고도가 워낙 높은 곳이라 그렇다고 한다. 출발지점인 모레인 레이크의 해발고도가 1,887m니 라치밸리는 2,400m가 넘는다는 얘기.

 

한참 올라가니 라치밸리라는 이름 그대로 라치트리가 숲을 물들이고 있다. 라치트리는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바늘처럼 생긴 잎이 온통 샛노랗게 물든다.

 

 

 

 

 

 

경사진 언덕을 한참 오르고 나니, 어느 순간 숲을 지나 툭트인 라치밸리 위로 장엄하게 솟은 텐 픽스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운데 독일 커플은 바로 전날 우리랑 똑같이 레이크 아그네스 트레일을 걸었다는데 또 이렇게 만나니 보통 인연은 아닌 듯. 이들은 아그네스에서 또 다른 트레일 Plain of Six Glaciers까지 하루에 섭렵했다고 한다.  한달 동안 RV를 렌트해 캐나다를 여행하며 허니문을 만끽하는 중이라고...

 

 

 

 

 

 

 

 

라치트리가 지금 가장 피크를 이루는 시기인 듯하다. 좀더 지나면 오른 쪽처럼 잎이 시나브로 떨어지면서 나중엔 가지만 남는다.

 

 

 

 

 

 

라치밸리 끝에 있는 호숫가에 앉아 준비해간 점심을 먹으면서 쉬었다.

맑고 깨끗한 호수에 포도를 씻으려는데, 물이 그야말로 얼음장 처럼 차갑다.

 

 

 

 

우리 목적지는 여기까지지만, 여기서 부터 저 위에 보이는 산 꼭대기가지 1.3km 거리의 Sentinel Pass 트레일이 이어진다.

 

 

 

 

멀리 Sentinel Pass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은 엄청날 것 같다만, 올라가는 길이 좁고 완전 지그재그로 장난이 아니다.

바로 전 날, 레이크 아그네스에서 빅 하이브로 오르는 이런 절벽길에서 고생한 경험이 있어, 우리는 아예 갈 생각을 접었다. 다른 두 부부는 올라가고, 우린 남아 천천히 구경하며 내려가기로 했다.

 

 

 

 

 

 

바위길을 따라 살짝만 올라가 봤다. 라치 밸리 트레일과는 달리, 바위 투성이 길이 아주 험하다.

 

 

 

 

 

 

 

 

 

 

 

 

 

 

헉헉거리며 올라갈 때와는 달리 여유있게 주변도 감상하고, 작은 호숫가에 앉아 쉬기고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신비한 봉우리들과 황금빛으로 물든 골짜기를 걷는 동안 눈부시게 아름다운 로키의 가을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마치 선경 속을 걷는 듯...꿈꾸는 듯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 새 모레인 호수다.

 

 

 

 

 

 

모레인 레이크의 특유의 푸른 빛은 빙하 암석의 입자가 여름철 빙하가 녹은 물에 섞여 호수로 흘러들어가 이런 신비한 빛깔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텐 픽스의 웅장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싼 모레인 호수의 주변 경관은 레이크 루이스 조차 따라올 수 없는 마력을 지닌다.

뽀족뽀족 솟은 봉우리와 하늘을 찌를듯한 침엽수 그리고 신비한 푸른 빛 호수...가장 캐네디언 로키 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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